Wednesday, July 30, 2025

1. 제 2의 고향이 어디신지?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대학원 지원이였다. 

1. 토플 점수. 3번 연속으로 79점 이라는 같은 점수를 받았다. 굳이 변명하자면 GRE 에 3개월 몰빵 후 점수를 잘 받아서 토플은 당연히 잘 나올거라는 생각에 (게으름에) 공부를 안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래도 한번은 80점은 넘을 줄 알았것만; 보통 상위 랭크 학교가 높은 토플 점수를 요구하는걸 고려해 보면 참 안일한 행동이였다.

2. 전공. CS (컴싸) 와 ECE (전자공학) 도 구분 못하고 학과명에 컴퓨터만 들어가면 지원했으니 이보다 멍청한 지원이 또 있을까싶다. 오죽했으면 USC 에서는 ECE 로 지원한것이 맞냐, CS 로 어플리케이션 넘겨줄까? 라고물어봤으니;; 

3. 경력. 삼성SDS 라는 나름 대기업을 5년이나 다녔다는 자만심에 그리고 코딩을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연구 경력도 없는 5년 전 학부 졸업생이 랭킹이 높은 학교로만 지원했으니 쉽게 어드미션이 나올리 만무했다.

학교 (CS) 랭킹을 나열 한 후 나름 이름 있거나 (i.e., 내가 겨우 알거나) 토플 79점을 받아주는 학교를 선택하니 40위 안쪽으로 12개의 학교가 추려졌다. 물론 여기에는 전자과도 포함이라 실제로 의미있는 지원학교수는 더 적을것이다;

이제와서 돌이켜 보면 이 얼마나 미련한 짓인가. 관련 연구 분야도 없이 연구가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교수들의 연구 분야를 알아볼 생각도 없이 마냥 학교 이름과 랭킹만 보고 지원한다는 것이. 물론 졸업 후 취업이 목적이였다면 이 방법도 나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석사 후 목표가 박사인 사람이 이러면 안되지; 이러니 4달 넘게 맘고생을 했지.. 쯧쯧.. 

천운으로 오하이오와 미네소타 CS 학과의 석사 입학 담당자가 그당시 나의 보잘것 없는 SOP, Transcript , 그리고 경력을 어여삐 봐줘서 오늘의 내가 있다는 생각에 누군지도 모르는 그 분들께 굉장히 감사한 마음이다.

거진 반년 이상 합격메일을 하염없이 기다리다 지쳐 국내 대학원을 본격적으로 알아보기 시작하려는 바로 직전인 2010년 4월 중순, 오하이오로 부터 날아온 한 통의 어드미션 이메일로 인해 그 동안의 모든 힘든 일은 나의 성취감을 극대화 시키기 위한 사전 장치에 불과한 것으로 느껴졌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모든 국내 대학원 관련 링크를 바로 영구 삭제하고 그동안 도움을 받은 고해커스에 짧게 자랑을 한 후 오하이오 주립대 합격자 카페에 들러 나의 존재를 알렸다. 그리고 오하이오 콜럼버스는 어떤 곳인지 검색하기 시작했다. 애초 지원할 때 랭킹과 나의 토플 점수를 기반으로 지원 학교가 정해졌기 때문에 어느 도시인지 혹은 무슨 주인지는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였기에.

와이프와 함께 오하이오에서의 새로운 삶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한지 수일 후. University of Minnesota-Twin Cities 로 부터 메일이 날라왔다. '여긴 또 어디야? 이런 학교도 지원했었나?' 야레야레. 합격 메일이였다. 미네소타는 어디지? 역시 사람은 간사한 지라 오하이오와 미네소타 둘 중 어디가 더 나은지 검색을 하였다. 일단 미네소타는 학비가 싸고 춥다 다만 랭킹이 조금 높았다. 나에게 추천서를 써주신 교수님께도 상담을 드렸더니 역시나 랭킹이 아주 살짝 더 높고 학비가 조금더 저렴한 미네소타를 추천해 주셨다. 미네소타로의 입학을 최종 결정한 이후 나의 삶은 모두 미네소타를 향해 있었다. 나에겐 제 2의 고향으로 여겨질, 황금같은 30대의 8년이란 시간을 온전히 바칠 곳으로.

Thursday, July 16, 2015

0. 프롤로그 고난의 시작

겨우겨우 살짝 눈을 떠보니 굉장히 낯선곳이다. 재빨리 짱구를 굴려보니 아 여기는 우리집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과 숙취로 인해 머리가 굉장히 아파온다. 

'누구 집이지?' 

총각 때야 술 마시고 낯선 곳에서 일어나는것이 일상이였지만  결혼한지 겨우 1년, 나의 술로 인한 외박에 열이 받아 집에서 짜증내고 있을 와이프가 떠오르며 머리가 더 아파온다. 
일어나 정신을 차려 보니 이제 막 결혼한 회사 동기의 수원 신혼집이였다. 웁스.... 다시금 효붕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5년간 몸 담았던 회사를 관두고 미국 유학을 준비한지 반년 만에 GRE 와 토플 점수를 받고 12개 미국 대학에 석사 입학 지원서까지 모두 보냈다. 마냥 놀며 합격 여부를 기다리기엔 생활이 궁핍해져 다니던 회사에서 프리랜서 (외주) 로  일하며 하루하루 마음을 졸이며 살아갔다. 어느덧 4개월이 흘렀지만 원하는 합격 결과는 나오지 않아 결국 '포기 80%, 희망 20%' 인 상황이였다. 

'그래 이제 세컨 플랜이다. 국내 대학원 석사 후 유학' 

어제는 같이 일하던 동기, 선후배들을 만나 하소연 하던 자리였던 것이다. 어렴풋이 기억나는것은 술 마시는 내내 푸념만 늘어놓고 울상, 진상, 화상이였던것뿐..

'왜 합격소식이 안오냐, 다 떨어지면 나 어쪄냐.. 나 국내 대학원 알아본다'

술 많이 마시고 모두 잊고 싶었을 것이다. 간만에 정신놓고 마신 술이라 더 일찍 정신을 놨고 또 그 만큼 더 마셨으니 숙취가 더욱 심함은 당연했다.

나름 손님이라고 나를 안방에서 재우고 거실에서 와이프와 자고 있는 동기를 깨웠다. 동기 와이프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밥 먹을 속이 아니기에 식사 권유를 마다한 채 세수도 하는둥 마는둥 허겁지겁 집 밖으로 나와 동기는 바로 옆 회사로 출근하고 난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유독 숙취가 심한탓도 있겠지만 실제로 수원에서 서울로 버스타고 강남으로 다시 지하철 타고 집으로 가는길은 멀었다. 뭐 가는 중간 중간 내려서 어제 먹은 걸 확인하는데 많은 시간을 쓰기도 했다;;

'집에가면 또 와이프한테 엄청 깨질텐데..' 

세상 그 무엇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며 속으로 세상을 비난 하며 비틀비틀 정신 못 차리고 집에 가니 어느덧 오후 1시였다. 다행히 집에 도착하니 와이프는 약속으로 밖에 나가고 집에 없었다. 

'그나마 숙취가 가신뒤에 혼나겠구나. 하루가 이렇게 또 흘러가는구나.. 이제 국내 대학원을 본격적으로 알아봐야겠구나;;; 제길슨.. 그렇게 열심히 단어 외웠는데 (참고로 2달간 1600자), 그렇게 열심히 돈 아끼며 준비했는데.. 올리젝이라니..'

세상이 무너지며 나 혼자 엄청나게 뒤쳐지는 기분이 들었다. 국내 대학원 정보를 얻기 위해 무심코 컴퓨터를 켜고 Google 에 접속하니 낯선 도메인에서 이메일 한통. 얼래? 오하이오 주립대?

'We are pleased to inform you the Graduate Studies Committee recommended you for
admission to the CSENG-MS program at The Ohio State University Graduate School
for Autumn 2011.' 
'대박...!@#!$!@^@!~!@#~@#%&%*~!!!!!!!!!!!!!'

지금까지 매번 'We regret to inform' 으로 시작하는 리젝 메일만 받다가 이런 메일을 받으니 세상을 모두 가진듯이 기뻤다. 더 이상 짜증 나 있는 와이프도 두렵지 않았고 부모님의 잔소리도 두렵지 않았다. 잠깐이나마 그 동안의 고생을 보답 받는 순간이였다. 얼마 뒤 약속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와이프는 으르렁 되며 날 몰아부쳤지만 난 기뻤다. 

'응 난 혼나야 해. 더욱 더 쎄게 혼내줘. 마음껏 혼내세요. 난 혼나도 쌉니다.'

세상 모든것이 아름다워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이것이 나의 새로운 고난의 시작인 것이였다....